성경본문 : 느헤미야 4:7∼14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병이 있다면 그것은 암도 아니요 백혈병도 아니요 에이즈도 아니요, 절망이라는 병입니다. 사람이 어떤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희망을 가지면 그것을 이겨가려는 용기를 가지지만, 절망해버리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 용기를 줍니다. 그것은 느헤미야가 처한 모든 환경이 절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여건들이었지만 느헤미야는 그 절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멋지게 이겨나갔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한 후에 바벨론이 파사에게 멸망을 당함으로 파사왕 고레스는 유대인들에게 해방령을 선포하게 되고 포로로 붙들려 갔던 많은 유대인들이 고국에 돌아오게 되지만 하나님의 성전은 무너져 폐허가 되고 그 땅은 황폐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바사의 관리로 있었지만 조국의 황폐함과 환난중에 있는 동족들의 참상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높은 벼슬도 버리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그 어려운 상황에서 주위 여러나라의 반대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할 때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속에서 사람들이 왜 절망했으며 느헤미야는 그 절망을 어떻게 이겼는가를 교훈받으며 우리도 절망에 처해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교훈 받고자 합니다. 왜 사람들이 절망합니까? 사람들이 절망에 빠지는 이유는
첫째가 하여야 할 일은 많은데 일에 능률은 없고 피곤에 지칠 때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처음에는 열심히 일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들에 대한 새로움이 점차 사라지고 너무 장시간 일하는 동안 육체적인 힘들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도 10절을 보면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백성들의 마음이 역사하여 일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기쁨으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절반까지 쌓아 올렸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하여야 할 일은 많은데 기운은 쇠하여져서 피곤에 지쳐있습니다. 이렇때 사람들은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어질 것이고 좌절해 버릴 것입니다. 산에 등산을 하면서 사람들이 때때로 정상을 포기할 때가 언제입니까? 정상을 향하여 처음에는 열심을 가지고 출발을 했는데 절반쯤 올라왔는데 기운은 지쳐있고 정상을 쳐다보니 더 힘든 코스들 만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이렇게 지쳐있는데 언제 정상을 오르나하고 중도에서 포기하고 내려가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좌절하는 사람들은 결코 정상을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사람들 좌절에 빠지는 이유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 하반절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하였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성공하게 만들어 갈수가 없습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우리는 그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일은 불가능합니다. 그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포기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일을 계획한대로 속히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의 확신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일을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의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습니까? 우리도 바로 본문의 유대인들과 같이 부정적인 생각속에서 우리의 일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일은 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할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일이 없느니라" 아멘.
세번째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다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라고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만에 폐허가 되어 버린 고국에 돌아와 흩어진 배성들의 마음을 모아서 자원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힘을 다하여 성벽을 건축하고 있는데 많은 이방민족들이 연합하여 유다를 협박하고 위협합니다. 11절을 보면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했습니다. 이방 민족을은 유대인들이 성벽 건축성에 둘러 쌓여 있는 성벽은 안전과 방어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할 수만 있다면 성벽 건축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들을 비난하였고 다음에는 조롱하고 그리고는 위협까지 한 것입니다.
"만일 너희들이 계속 성벽을 건축하면 우리가 살륙을 할 것이다” 이것이 백성들을 두렵게 만든 것입니다. 이 두려움이 유대인들을 좌절하게 만들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고 열번이나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12절) 이것이 또 다른 사람들을 좌절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도 부정적인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일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어떤 사람의 말을 계속 듣는다면, 우리도 그 사람을 믿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방해하는 세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두려움이 될 수도 있고,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또 이런 것들을 이용하여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도전해 옵니다. 이런 좌절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느헤미야가 취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느헤미야가 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겨냈습니까?
첫째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4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데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 잡히게 하시고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시고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9절에도 "우리가 기도하며"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가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이기에 삶의 위기가 올 때 맨먼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신앙이 있는데 기도하지 않는자가 없고 기도하는데 신앙이 없는 자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하늘문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늘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 손발의 착고가 풀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초대교회가 옥중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기도할 때 베드로의 결박이 풀어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결박을 푸는 열쇠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의 닫혀진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좌절하게 합니까? 좌절을 이기는 비결은 기도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힙입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기도는 권세입니다.
둘째로 느헤미야는 크신 주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었느니라"했습니다. 여기에서 주를 기억하라고 하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당신 자신을 주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 자신을 주께 드리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적인 권능을 더욱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과거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과거의 삶속에서 베푸신 모든 은혜를 생각하면 마음속에 감격이 솟아 오를 것입니다.
둘째는 현재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함께 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나의 삶속에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느끼든 느끼지 않든간에 현재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내곁에 계시는 것입니다.
셋째는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축복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복주시며 우리의 하는 일을 도우시며 우리의 가는 길을 형통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좌절에 빠질 때 우리의 환경을 생각지말고 주님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환경은 우리를 좌절시키고 실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좌절이 있을 때 우리는 좌절을 대적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말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싸움없이 좌절속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좌절을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좌절은 마귀가 가져다 주지만 성령은 우리에게 이김을 주십니다.
우리는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일에 능률이 없고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 때문에 좌절할 수 있지만 기도하고 주를 기억하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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