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요한복음 12:1~6
기독교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종교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요. 가장 우선되는 일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최고의 특권인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해야 할 최우선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구약의 경우는 예배가 제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며 경배였습니다.
신약의 경우는 제사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예수그리스도 자신이 산제물이 되어 구약의 제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는데 신령이라는 말의 뜻은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함을 입어 예배드리는 사람과 자기 힘으로 예배드리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자기 힘으로 예배드리는 사람은 예배가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해지면 예배가 달라집니다. 또한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진리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예배 가운데 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입니다. 감사가 없는 제사나 예배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배는 크게 두가지 성격으로 구분됩니다. 그것을 드리는 예배와 받는 축복입니다. 찬송, 기도, 헌금 등은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나 설교, 축복, 은혜는 예배를 통해서 받습니다. 한마디로 드리는 것이 없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일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시대는 유목시대 였기 때문에 주거이동이 잦은 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거처를 옮길때마다 맨 먼저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 제사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변제로 드리기 위하여 단을 쌓고 이삭을 결박하여 단위에 놓았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그리고 일이 있을 때마다 제단을 쌓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고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신앙 생활의 기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예배에 힘써 참석해야 합니다. 낮 예배는 물론 주일 저녁예배, 수요 예배, 새벽기도회 등에 열심히 참여해야 합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 신앙이 자라기를 원하는 것은 이율 배반입니다. 또한 시간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도로 교통 사정과 문제점을 감안할 때 예배에 늦는 것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불가피한 상황은 제외하고 그 마음이나 정성은 검토되어져야 합니다. 오페라나 음악회가 연주되는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 회관은 시작 시간이 지나면 문이 닫힙니다. 늦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의례히 예배는 늦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뒤 다 빼먹고 설교만 들어도 된다는 생각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기차는 정시에 떠납니다. 비행기도 시간이 지나면 탈수가 없습니다. 헌데 예배는 늦어도 된다는 생각이라면 어떻게 그 신앙이 바로 정립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은 약속입니다. 약속은 진실성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시간 약속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배는 정성으로 준비하고 정성으로 드려야 합니다. 몸가짐, 마음가짐은 물론 헌금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변도 정돈해야 합니다. 휴대폰이나 호출기 스윗치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화장실도 미리 다녀와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시간이며, 신령한 은혜와 복을 받는 시간이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제사 뿐만아니라 구약의 모든 제사는 제물과 함께 드렸습니다. 신약의 경우도 롬 12장 1절에서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 어느 제사도 빈손 제사는 없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철저한 희생과 헌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12장 1절을 보면 "내가 주께 감사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 12장이 밝히는 감사할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진노가 그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일곱 대접과 일곱 나팔의 진노의 재앙을 생각해 봅니다. 누가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습니까? 왕들과 권세자들과 적 그리스도와 이단들과 불신 세력들이 어린양의 진노를 견디다 못해 "산아 나를 가리워다오 바위야 내 위에 떨어져 나를 어린양의 진노로부터 가리워 달라”고 절규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안위하시오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예언입니다. 내가 받을 진노를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대신하시고 나에게 안위와 평화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받을 진노와 형벌을 주님이 대신 당하시고 나에게 안위와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이사야 53장에서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한가지 사실만을 가지고도 일평생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 사실을 데살로니가 후서 2장 13절에서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린양의 진노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이보다 더 큰 감사가 어디 있습니까?
둘째는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고 했습니다. 2절을 자세히 보면 "나의 구원, 내가 의뢰하고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등으로 자신의 신앙이 고백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신앙 고백이 분명해야 합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하나님은 나의 구원, 나의 힘, 나의 노래,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을 없이하는 그 하나님을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있을때 내가 주께 감사 할 수 있는 것이며, 지금의 삶이 어렵고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나의 힘과 능력이 되시는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속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애굽을 구원자로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가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자 재빨리 생각을 바꾸어 앗수르를 구원자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에게 선지자들은 "그들이 구원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구원자이시다. 애굽으로 가지 말라. 앗수르를 의지하지 말라. 도울 힘이 없는 방백들로 의지하지 말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과학도 물질도 권력도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시고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감사합시다.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게 된것을 감사합시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심을 감사합시다.
셋째는 구원의 우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으리로다”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을 사는 동안 여러 가지로 우리의 육적·영적 갈증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갈증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7:37에서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의 우물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 나와서 생수를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가져도 가져도 더 모자람을 느끼게 하며 갈증을 느끼게 합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우물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살 때 모자람이 있어도 만족함을 가지게 되며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으며 약함 가운데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보세요. 남편을 다섯이나 가진 여인이었지만 주님 만나 생수를 마심으로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의 문제들을 세상의 것들로 해결할 방법을 찾지 말고 구원의 우물되시는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먹는 자 마다 다시 목 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영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날마다 기쁨으로 구원의 샘물을 길으십시오. 구원의 샘물되시는 주님앞에 나올 때 우리의 삶의 문제가 해결 받습니다. 병든 자들이 구원의 샘물되시는 주님 앞에 나올 때 병고침을 받습니다. 약한 자들이 구원의 샘물되시는 주님앞에 나올 때 강함을 얻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합시다. 진노를 그치고 우리를 안위하시는 주님께, 나의 구원이 되시는 우리 주님께 나의 구원의 우물이 되시는 주님께 내가 감사드립시다. 감사로 영광을 돌려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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