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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  Homepage Email [2006-12-18 19:34:19]  HIT : 6288  
Ⅰ. 서론

오늘날 교회에 있어서의 목회자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가운데 함께 일어난 평신도운동과 함께 진정한 의미에서의 목회자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일이 많아졌다. 세계가 복잡해지고 다원화되면서 교회의 역할도 줄어들기 보다는 증대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된 기독교 공동체는 2000여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의 시점에 약 12억이나 되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 물론 이 숫자는 로마카톨릭을 포함한 숫자이지만 기독교가 넓게 퍼져 있는 것 만큼이나 다양한 교파와 공동체들이 산재해 있으며 성경에 근거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전통에 따라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들 각교단의 목회자의 위치와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으며 또 어느것이 성경적으로 타당한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오늘날 다원화된 사회는 교회에 어떤 역할을 요구하고 있으며 또 목회자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자는 먼저 현재 한국내에서 교단의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단들의 목회자의 위치와 역할을 살펴보고 이를 성경적, 신학적으로 점검해 본 다음에 침례교적 입장에서 분석해볼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목회자의 위치와 역할을 제시해 볼 것이다. 이를 위해서 목회란 무엇인가? 목회자란 무엇인가를 신학적, 역사신학적으로도 점검해 볼 것이다.
Ⅱ. 목회의 어의(語意)

‘목회’란 영어로 ‘ministy, ministration’, ‘목사’는 ‘minister’, ‘목회하다’는 ‘to minister’라고 씌여진다. 손병호 「목회경영학원론」(그리인, 1991), p.21.
제이 E. 아담스는 “목회”라는 명칭은 그리스도인 사역에 대한 모든 성경적인 묘사 가운데 깊숙히 스며들어 있는 근본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독특한 기독교적 용어이다. 이 명칭은 하나님안에서 그 시작과 끝을 발견할 수 있는데 성경의 풍부한 비유들이 그 의미를 나타내 주고 있다. Ibid, p.24.고 했다.
아담스는 이 비유의 의미를 시편 23편을 통해 밝힌다. “여호와는 나의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이 위대한 선언 가운데는 “목회사역”이 의미하는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제이 E 아담스, 「성공적인 목회사역」 정삼지역(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 1989), p.11.고 했다.
여기에는 개개의 양에 대한 관심, 쉼, 매일의 필요를 공급함 피곤하고 지치고 낙심될 때 회복과 격려, 안내와 인도, 교훈과 교육과 바르게 함, 목적과 동기부여, 안전과 보호, 개인적인 교제와 다정한 우정 등의 의미가 있다.
아무튼 이러한 목회의 의미를 종합해 본다면 기독교적인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공동체에 속하여 있는 모든 구성원들을 관심을 가지고 돌보며 쉬게하며, 그들이 신앙안에서 전인격이 성장하도록 돕는 총괄적인 활동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테두리 안에서 그들을 어떤 원리와 방법으로 돌보아야 할 것인지를 살펴 보는 것이 본고의 목표이다.



Ⅲ. 목회의 목표와 원리의 성경적 근거

1. 목회의 목표와 원리

목회의 헬라원어는 διακονος Deacon, Deaconess)이다. 이는 매우 평이한 말로서 아주 서민적으로 사용되었다. 식탁에서 봉사하거나 궂은 일을 할 때 자주 사용되었고 초대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말이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이방인 종들에게 διακονοι를 사용했고(롬13:4) 다른 사도들도 διακονοι를 일반적이 봉사때에 사용하였다(고전3:5, 고후3:6, 엡3:7, 골1:23) 그리고 διακονια는 유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전해주러 갈 때 사용되었다(행11:29, 고후8:4, 9:1, 12, 13 롬15:31) 그리고 이 세 단어는 교회에서 목회직에 사용되었다기 보다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선교활동에서 사용된 때가 많았다.
그 다음 사용된 단어는 λαερεια 또 λατρευειν(service 또는 ministration)이다. 이와 비슷한 θεπαπεια 나 θεραπυειν은 신성한 예배나 의식에선느 한 번도 쓰여진 적이 없다. 신약기자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의식에서는 λατπεια, λατρευειν 또는 λειτουργια 나 λειτουργειν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며 때로는 희생을 하기까지 하는데 사용하였다. 손병호, op.cit., p.25. ㄱ러나 유대인 예배(행7:7, 롬7:4, 히8:5, 9:1, 13:10)와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롬12:1, 빌3;3)에서 더 많이 사용되었으며 하나님 나라의 예배(계7:15, 22:3)에도 언급되었따.
그리고 κειτουπγοσ,  λειτουργια, λειτουργειν(public minister) 등의 세단어는 어느 단어보다도 공공연하게 봉사하는 시정(市政)의 봉사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종교의식에 관여한느 자에게도 사용되었다. 물론 이 말은 헬라뿐 아리나 애굽에서도 같이 사용된 말이었다. 손병호, op.cit., p.26.
이 말은 LXX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의 의식과 교회직분자들에 적용되었다. 누가 눅1:23, 바울행13:2, 빌2:17., 히브리서히8:26, 10:11에서 언급된 내용을 보면 믿음에서 용솟음치는 선행을 말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으로 증거하는 자들을 말하였다. 이는 어떤 개인을 말하느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 또는 유기체까지를 말하는데에 사용하였따.
이상의 헬라어 원어들을 종합해 보면, 결국 ‘봉사한다’는 의미로 집약된다. 그리고 이 말들은 교회가 점차 가시적으로 운영되면서부터 교회 내외에서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교회 직분자’라는 의미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손병호 op.cit., p.22.

2.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시편 23편, 목자되신 하나님은 결국 도성인신하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으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목자이시며, 우리 믿는 모든자들의 목자이시다. 나악서 그를 믿기 원하는 모든 자들의 목자가 되어서 보호하고 인돟고 살피신다.
주님은 자신의 오신 목적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분명히 밝히셨다. 이를 위해 선한 목자로서 전파하며, 가르치며, 병고치는 등 온갖 섬김과 돌봄의 일들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고 선언하셨고 이 선언대로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목회사역과 대속사역은 예수님에게서 그치는 거이 아니다. 예수님의 승천하신후 예수님의 목회사역과 대속 사역은 모든 목회사역의 모범과 근거로서 성령을 통하여(행20:28) 사도들에게 계승된다. 요21:15-29. 아담스는 베드로의 경우에 주목한다. 베드로는 그의 사역을 양을 친다는 용어로 묘사하는데 그의 저자들에서도 이것이 분명히 나타난다. 아담스, p.17.
사도들은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 보다 큰 거도 하리니 인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는 말씀대로 예수님이 승천하신후 예수님의 일은 계승한다. 이때 사도들은 그를 단독으로 예수님의 일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일을 계승하는 사도들에게 언제나 성령이 함께 하셨다(요14:16, 행1:8) 그런데 이러한 계승의 근거는 예수님의 대속사역이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사이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켠서 죄인을 목회사역은 바로 이 대속사역을 핵심으로하여 진행되었다. 사도들의 메시지는 “예수님의 대속사역을 받아들여 구원을 얻고 자라가라”는 것이었고 그들의 남은 사역은 이 구원과 성장을 위해 양떼의 상태를 살피며 필요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도들의 목회사역은 후에 그들의 후계자들에게로 계승되어진다(벧전5:1-2)
이 비유에서 사용되는 ‘ποιναινω’(먹이다)라는 동사는 그 묘사된 임무를 볼대 ‘먹이다’라는 하나의 제한된 개념보다는 오히려 회중을 ‘완전히 돌본다(먹이는 것을 포함)’는의미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아담스, op.cit., pp.16-17. 그에 따르면 ‘목회'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쯔빙글리의 저서 The Shepherd에서 Poimenic이란 용어를 목양에 대한 연구를 가르치기 위해 사용함으로써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양을 집단으로나 개개의 양으로 돌본다는 것은 가르침과 구별된 목회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이다.

3. 신학자들의 견해

칼빈은 목회사역의 목적을 신도들로 하여금 신앙을 얻고 그것이 증가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집행하며 권징을 행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래서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 제4권 교회론에서 교회를 어머니와 같다고 했던 것이다. 칼빈의 목회관은 신앙을 낳은 복음선포와 회개하고 거듭나게 하는 일과, 칭의와 성화된 삶을 살게하는 일을 돕는 일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강요 Ⅳ.3.5; 3.9;1·1; 11.2; 2.5.
    로날드 S. 웰레스 「칼빈의 기독교 생활원리」 나용화역(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 1992). p.40.
앤더슨(Ray S. Anderson)은 ‘교역을 위한 하나의 신학’이라는 글에서 교역은 기독론적이고 삼위일체적인 기초위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자신의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이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하신 사역이 바로 목회의 내용이며 그의 사역은 오늘날 성령으로 우리속에서 이루어져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Ray S. Anderson, ed Theological Roundation for Ministry(Grand Rapids:Willam B. Eardmans Pub Com 1979) pp. 6-15.
또 그는 ‘세상속에서의 삶’을 말할 때 “성육신적 삶(The Incarnational Christian)”이라고하였따. 그것은 ‘그리스도의 삶’을 기초로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내신 하나남의 사역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유일한 근거요, 중심이 되는 삶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종’의 삶이요. ‘봉사의 삶’으로 표시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그것은 곧 이세상속에 존재하고 있는 교회의 형태요 양식이라고 하였다. Ibid, pp.538-94. 이러한 그의 목회신학을 그는 ‘그리스도 프랏시스(Christo Praxis)’라고 했다.Ray S. Anderson, ed, The Praxis of Pentecost (Californa:Fuller Theological Seminary, 1991), pp.7-23. 그의 목회원리를 요약하면 첫째 치유와 소망을 이루는 것 용서와 자유를 이루는 것, 해방과 능력주심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Ivid, pp.25-40, 42, 53-58, 70-72.

4. 신약성서의 목사

“목사”라는 직임과 더불어 환련될 구절ol사도행펀에 나타나 있다는 것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 대하석 바울이 :런면한 말씀 가운데 기록된 것으로 다음과 같다. “너회는 자기 (장로:elder)를 위하여 온 양메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회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괴로 사실 교화를 치계 하셨느니라"
이 한절 말씀속에 장로(elder). 감독(bishop)또는 감독자(overseer) 그리고 목사(pastor)의 개념이 각각 토함되어 있고 또 그 직임이, 무엇인지도 잘 언급되어 있다. 여기에서 목사의 직임에 환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가) 교사
교사의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교사란 말은 첼라어 “διδἀσκαλος”(디다스 칼로스)에서 왔다. 이것은 히브리어의 랍비란 말과 같은 뜻이다. 이 명칭은 예수님을 "主(Master )"라고 부름과 더불어 “선생(Teacher)”이라는 호칭으로 불렀을때 사용되기도 한 것이다. George Ricker Berry, The Inter liner Liteal Translation of the GREEK NEW TESTAMENT with th Authorized Uirsion, (Grand Rapids, Michigan:Zondervan Publishing House, 1968), p.27. 이와같이 목사도 하나의 선생이 되어져야 하는 것이 다. 즉. 초의 종은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 딤전3:2, 딤후2:24.
나) 섬기는 자(Minister)
그 외에 목사의 직임에는 교역자 흑은 성직자 “Minister”로서의 임무가 포함되어 있다. “Minister”란 말은 라틴어 “minuere”에서 비룻된 것으로 이 .말이 동사 “ministrarl”로 쓰여지면서 섬기는 것(to serve), 종속되어지는 것(to subordinate)이란 뜻으로 통용되어 거기서 “minister”란 탈이, 된 것이다. Reader's Digest Ed, Family Word Finder plea-santville, (N.Y."Reader's Digest Association Inc., 1975), p.513.
그런테 실약성경에 나와있는 “minister” 용어를 활용해 보면 세가지의 다른 헬라어로 되어 있옴을 찾아보게 된다.
① "διἀκονος“(더아코노스) - 이 말은 노동자. 종 또는 집사(Deacon)라늘 뜻이다.
⑦ “λειτουργὀς”(레이투르고스) - 이 말은 公從(public servant ), 일군(worker)의 뜻을 가지고 있다.
③ “ὑπηπἐτης”(휘궤레테스)라는 이말은 노젓는 사람 또는 보조자란 뜻이다.
이러한 말들은 각각,교역자(minister)나 목사( pastor)로서의 직임과 그 기능의 본질이 무엇임을 표현한 것이다. Ralph G. Turnvull, Ed, Baker's Dictionary of Practical Theology, 박근원, 허경삼, 정용삼 공역, 실천신학사전 3권, 「목사학」 (대한기독교출판사, 1981), p.239.


다) 청지기
바을 사도는 “ὑπηπἐτης”라는 용어를 “청지기”(οἰλοφὀμος 오이코노모스:stewards), 또는 하나님의비밀을 맡은 집 관리인으로 관련지어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의 전문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충성된 청지기로서 가르치는 책잉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용어 가운데 “ὑπηπἐτης”와 “οἰλοφὀμος”란 말은 둘 다 노예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바울은 자기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종”이란 말을 즐겨썼다. 황의영, 「목사학」, (성광문화사, 1983), p.63.목사는, 하나님의 비밀을 가르치는 책임을 진 교사가 되지 않으면 안뒨다. 주의 종은 자기 자실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하여 세우심을 입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Ⅲ. 교역자의 직무와 기능

1,교역자의 목회적 기능
  
힐트너(Seward Hiltner)는 “목회적”(牧會的)이란 말에는 두가지 의미가 일는데 하나는 교역자가 하는 모든일은 목양(牧羊) 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교역자의 다른 기능을 의미한다고 한다. Seward Hiltner, Preface to Pastoral Theology, 민경배역, 「목회신학원론」,(대한기독교 서회, 1981) , pp.13-14.e 다시 말하면 교역자가 하는 륵수한 전문적인 것도 있지만 교역자가 양들을 위해 하는 모든 행위가 목회라는 것이다. 곧 교역자나 교회가 하는 띨의 전부로서 그룰퐈의 만남. 설교. 편지 쓰는것 등 한 두사람과 목회상담을 하여 얻은 목회효과 까지도 목회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부처(Bucer)는 목회의 직무를 다섯가지, “그리스도에게서 멀리 떠나있는 자들과” 다시 그리스도에게로 볼러 들이는 일과 떠나 갔던 자들을 다시 인도해 오는 일, 죄에 빠졌던 사람들의 생을 다시 원상으로 회복하는 일과 약하고 병든 신자들을 강하게 만드는 일, 그리고 건전하고 강한 신자들을 이끌어. 훌륭한 일에 전진하도록 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Ibid., p.54.
여기에서 "목회의 다섯가지 범위가 구체적으로 잘 표현되고 있다. 즉 교역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와 전도 목회상담 심방 치유 예배 성례 교제 등 양을 돕는 모든 일을 포함하고 있다.
아담스(J.E. Adams)는 시편 23편을 인용하면서 교역자는 피곤하고 지치고 힘이 빠진 양들을 돌보아 주어야 하며, 양들은 낙심할지도 모르는데 낙심한 양들을 돌보아 주며, 양들을 소생시키는 것이 목회사역의 큰 부활이라고 말한다. 또한 교역자는 피곤해하고 낙심한 양들을 쉴만한. 물가와 초장으로 인도해 가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자기의 양들을 위험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Jay E. Adams, Competent to Counsel, 정정숙역, 「목회상담학」, (세종문화사, 1979), pp.118-119.
아담스는 불신자를 상담할 때 복음을 전도해야만 하며 이것이 구원이다고 말한다. Ibid., p.120. 인간이죄의 속박에 메이게 되면 그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령의 세력이 들어차게 되는데 목회는 이러한 속박과 운명의 불안속에 뛰어 들어가는 것은 물론 정치와 경제세계의 영역까지 파고 들어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인간을 걍화 시키는 것bi,목회라는 것이다. 즉 인간은 신음하는 피조물의 하나로서 인간의 불행은 죄 때문에 온 것이며. 목회상담에서 이를 다루어야 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증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전도이며, 사람을 낚는 일이요. 변증학이며, 교회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선교가 된다. 복음전파에서 전달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 혹은 기독교 메시지를 취급하며 전달의 촛점은 구원의 진이고 전달의 대상은 모든 사람이다. 누구든지 복음이 전달되고 받아들여지면 반드시 특별한 일이 생기게 되는데 거기에서 치유(Healing), 지탱 (Sustaining), 인도(Guiding). 화해(Reconci1ing)가 일어나게 된다. William A. Clevsch & Charles R. Jaekle, Pastoral Care in Historical Perspective, (N.Y.:Jason Aronson, 1975), pp.8-10.
여기에서 치료란.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처를 싸매주는 일이요. 지탱은 “용기를 가지고”라는 본래의 의미처럼 위로하는 일로서 고통을 말하는 사람과 함께 서있는 것이며 인도는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힐트너는 복음을 전달한다는 것과 양떼를 돌본다는 것은 목적이 퍼차 다르지만 목회활동적인 면에서는 꼭같이 중요하고 양면성을 떠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Seward Hiltner, opcit.., p.76.
오든(Thomas C. Oden)은 예수님의 목회활동을 교육. 선포.치유의 삼중적 이라고 말한다. Thomas C.Oden, Kerygma and Counselling, 이기춘, 김성민 공역, 「케리그마와 상담」, (전망사, 1983), p.178.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회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과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4:23)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교육과 치유라는 삼중교역은 오늘날 교역자들의 목회활동을 요약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교역자의 목회적 직문는 양들을 바르게 인도하며 치료하고 지탱하며 화해케 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교육이든. 심방이든, 설교이든, 상담이든 양들을 잘 도와 건강하게 살아가게 하는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 전통적인 목회의 직무

목회의 기능은 펴사적으로 각 시대마다 문화적, 심리적, 지리적, 종교적 상황에 따라 변화되면서 결정되어 왔으며 전통적으로 치유, 지탱, 인도, 화해의 네가지로 발건해 왔다. William A. Clebsch and Charles R. Jaekle, opcit, pp.14-23.
즉,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임박한 재림시까지 흠없이 살도록 교인을 지탱시켜주는 지탱의 목회를 박해시대에는 배교자들(황제 숭배자 등)을 12선 내지 13년의 권징을 받은 후 받아들이는 화해목회를. 제국시대에는 기독교가 국교화 되면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교육적으로 힌도하는 인도목회를. 중세시대에는 성례전적 치유목회를. 문예부흥 시대에는 종교 개혁기의 화해목회를, 계몽주의 시대에는 인도목회, 종교적 개인주의 시대에는 목회적 인도목회가 특징이었으나 전인적 치유를 목표로 하고 다른 기능도 무시하지 않았다.

1)치유기능(Healing)
치료란 온전케 하는 일이며 기능이 완전히 작용하도록 원상복귀 시켜준다는 것이며. 방향이나 스케줄의 기능적인 손상을 입었던 것의 완전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정신적인 것 뿐만 아니라 육체적 영적 모든 면에서의 완전성을 의미하며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면까지외 완전성을 포함한다.
튜니어(Paul Tournier)는 “질병을 치료하려 하지 말고 환자를 치료하라”고 했다. Paul Tournier, The Healing of Person, 홍찬규역, 「인간치유의 길」, (보이스사, 1977),이 말은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두 환자 중에서 한 사람은 빨리 회복되고 다른 사람은 자실의 살려는 의지를 과뢰시키는 보이치 않는 불안에 휩싸여 잘 회복되지 않는 것과 같이 정신을 치료하면 육체의 치료도 뒤따르게 되며 목회에서 의학적인 치료에 앞서 정신적인 치료를 해 줌으로 의학적인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는 말이다. 그러나 신앙이 치료를 하는데 의학적 치료의 보조나 단지 영혼만이 아니라 인간의 전인적인 죄 많은 자아 그 전체이다.
치유는 결함, 침해. 왜곡 등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고척 그 이건보다 떠나 발전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능으로서 초대교회로부터 여러 방법으로 사용되어 왔고 일상생활의 세세한 부활에 이르기까지 침투한 모든 종류의 질병들을 고치는 것을 포함한다.
힐트너에 의하면 치유를 기능적으로 전제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손상되고 파괴된 인간들을 전체성의 상태로 되돌아 가도록 돕는데서 이루어진다고 보았으며 이전 상태보다 차원이 높은 영적 통찰력과 복지를 성취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즉, 목회에서의 치유는 단지 질병으로부터의 회복 뿐만 아니라 영적 성장까지를 의미하는 뜻이다. 그런데 이 치유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때 그 사람을 구속해 오던 걱정, 습관에서 해방되며 그가 업애려고 헛되이 갖은 노력을 해도 없어지지 않던 공포와 원한과 증오심을 깨꿋이 털어버릴 수 있게 뒨다. 그러므로 인간이 치유뒬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이다.

2) 지탱의 기능(Sustaining)
지탱이란 “함께 서서 도와준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죽음과 갛이 전체 상황이 변경될 수 업거나 변경할 수 없는 상태에서 행해지는 목회기능이다. 지탱기능, 보조기능인테. 완전하던 것이 깨어지고 훼손을 입어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할 때로는 당장에는 불가능할 때 행하는 용기와 격려의 목회기능이다.
지탱의 목회는 충격과 상실이 플 때와 돌이킬 수 엄는 췌손과 몰락의 과정에서의 두 경우이며 하나님과 교인들 전체를 대신해서 함께 서있다는 표적을 주기 위해 하는 목회로서 실제상의 관계를 갱신하는 확인 격려의 목회이다.
지탱의 기능에는 보존(Preservation), 위로(Conselation), 결속(Cons olidation), 구속(Redemption)의 네 단계가 있다. W. A. Clebsch & C. R. Jaekle, opcit., pp.44-48.
위와같이 지탱의 목회는 하려고 하는 띨을 고무해 주는 일이며 어려운 조건에 대처 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 주는 목회이며 위로의 목회요 같이 서있는 동참의 목회이다.

3) 인도의 기능(Guiding)
인도목회는 여러가지 가능성 중에서 가장 적절한 핵동과 결단을 돕는 지혜이다. 여러가지의 서로 다른 생각들과 행동들 사이에서 선택 하도록 한가지 생각이나 행동만을 선택해야 하는 어러움에 직면한 사람들헤게 그가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에 관한 지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목회의 한 기능이 인도이다. Ibid., pp.49-55.
여기에서 무펏보다도 중요한 것은 켤단인테 안내아는 인간의 동기를 촉발하고 자각의 환경을 조성시켜 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스스로 결단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지 미리 준비한 해답을 주어서는 안된다.
4)화해의 기능(Reconeciliation)
화해 목회는 인간 자실이 파괴해버린 관계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통, 사귐의 관계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 사역임과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된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면 나로부터 화해의 물결이 흘러 나오게 되어 하나님과 나와외 관계회복은. 나와 그와의 관계회복을 가져오고 하나님과 그와의 판계도 회복되어진다.
그렇게 됨으로 개방적인(openess) 나와 개방적인 사회가 되어진다. 환자가 자기 화해를 이룬 살아 있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하여 자기 자신도 자신과의 화해를 이를 수 있으며 자신에 대해 개방적이 될수 있다는 가능성을 새롭게 각성하게 되며 조화를 이룬 사람과의 함께 지내는 과정 자체가 치유의 힘이 되고 우리의, 소외를 같이 나누자던 하나님의 통일성 속에서 통일을 맛보며 안락을 맛볼수 있다. Martin Buber, Ich und Du, 김천배역, 「나와 너」, (대한기독교서회 1983), p.89.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회 목회자로서의 위치
 
     61. 목회자 리더십 진단
     59. 목회자와 목회자간의 윤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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