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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목회자간의 윤리관계 프린트   
글로리  Homepage Email [2006-12-18 19:34:19]  HIT : 4787  
목회자와 목회자간의 윤리관계

1. 서론

오늘날 한국교회의 발전은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것으로서 구미교회의 관심과 연구의 대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교21세기가 채 지나지 않아 인구의 약 4분의 1이전국통계연감(종교인구), 1996. 통계청. 기독교인이 된 예가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성장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기 마련인데 그 중 하나가 목회자들간의 윤리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선교 초기에 안수받은 목회자가 손을 꼽을 정도였지만 1990년도를 기점으로 1년에 목회자가 수천명이 넘게 배출되고 있는 실정이며, 본교단만하더라도 매년 몇백명의 신학생이 졸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비례해서 졸업과 안수후에 교회를 담임하거나 새로운 개척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몇십미터의 거리를 두고 교회가 난립하게 되어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동역자들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목회자들간의 마음에 상처가 될 뿐 아니라 세상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쳐 결과적으로 복음전파의 장애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적인 목회자의 윤리문제를 살펴보고 이의 적용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할 것읻. 결국은 서로 서로가 복음의 동역자요, 함께 짐진자로서의 인식을 같이 하게 되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성경적인 대안을 살펴 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2. 성경에 나타난 목회자와 목회자의 문제

1) 사도들의 관계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제자들을 부르셨다. 마4:19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것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고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서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승계하는 사역자로서도 부르셨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그 제자들에 대하여 천국의 시민된 자로서의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그 제자들에 대하여 천국의 시민된 자로서의윤리와 그 도를 말씀하셨는데, 그 핵심은 마태복음 5:1-16에 나와 있는 산상수훈에 드러나 있다. 우리가 흔힌 ‘팔복’이라고도 하는 이 수훈은 하나님과 사람 앞엣 우리가 취하여야 할 자세를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셨는데 그 핵심은 온유와 겸손, 화평과 청결,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의를 위하여 핍박과 고난을 받기까지 하라는 것이다. 정훈택, “신약에서의 기독교윤리의 근거와 그 의의”(부산:에페소서원, 1990), pp.6-21.
신약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일반적인 계명은 우리가 흔히 황금률이라고한느데, 그것은 “대접을 받고자 하거든 대접을 하라”는 것이다. 김세윤, “신약에서의 평화”(서울:총신대학신학대학원 학술자료집, 1990), pp.46-48. 성경 눅6:36-38. 즉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곧 남을 대접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남을 대접하지 못하고 남에게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그분의 기도에서도 드러난다. 마지막 고난의 길을 앞두고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하셨던 요한복음 18장에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하려함이니이라 곧 내가 저희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18:22-2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구원에 있어 영적인 구원에 머무르지 않고 저들의 전인격이 변화받아 조금도 악이 없고 오히려 선함으로 악을 이기는 그런 새로운 나라를 소망하며 기도하셨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구원에 있어 영적인 구원에 머무르지 않고 저들의 전인격이 변화받아 조금도 악이 없고 오히려 선함으로 악을 이기는 그런 새로운 나라를 소망하며 기도하셨떤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러한 주님의 소망을 저버린채 인간적인 다툼과 시기와 질투를 보였고 그러한 다툼은 그들의 부모들에게 까지 모이어지게 되었다(눅22:24).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하여 주옵소서” 막10:37라고 하였고 또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18:1라고 주님께 질문하기도 하는 인간적인 한계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제자들의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새로운 제자들간의 윤리 즉 천국시민된자의 윤리를 말씀하셨는데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13:34-35고 하심으로 사랑의 윤리를 말씀하셨다. 또 다른 곳에서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을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자가 아니냐 그러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중에 있노라” 눅22:25-27
이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나라의 사역자요 일꾼으로서 그리고 큰 책임을 맡고 있는 자들로서 섬김과 사랑의 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대로 삶으로 드러나셨는데 성육신하신 그 삶 그자체가 바로 그분의 가르침이 되었던 것이다.
2) 초기 선교사들간의 갈등
사도행전에 이르면 초기 선교사들이라고 할 수 있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마가의 갈등이야기가 나온다.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느 ㄴ것이 옳지 않다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리라” 행15:36-41
갈등의 원인은 고난을 회피한 마가를 바울이 함께 동행하지 않기로 한데서 발생한다. 초기 제자들의 문제는 주의 나라가 임하였을 때 누가 그 영광을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였지만 선교사들의 문제는 고난과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데서 일어난 문제였다. 아무튼 이일로 ‘심히 다투었고’, ‘피차 갈라서게’ 되었으니 성경이 보여주는 최초의 갈등이요. 분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훗일 바울은 마가를 용납하고, 마가 역시 변화되어 화합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나와 함께 갇히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골4:10-11
이러한 일련의 기록들을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는데 그것을 몇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리스도의 사역자들간에도 갈등이나 알력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첫째 이유는 우리의 인간적인 한계 때문이요. 둘째는 우리가 아직도 그리스도이 법을 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따.
둘째, 그러한 갈등이 때로는 분열, 그리고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러한 굴절이 때로는 사역을 힘들게 하기도 하고 교회내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셋째,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안에서는 이것을 해결하는 원리가 제시되어 있는데 그것은 사람과 섬김의 법이 그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원리와 모범을 따랐을 때 그들의 갈등은 해속되었고 치유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이 원리대로 서로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되려고 할 때 치유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원리

1) 성육신의 원리
사실상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조문화된 법이 없다. 의문은 우리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의문에 속한 증서를 모두 도말하셨다. 롬7:6
이러한 속죄의 축복이 우리에게 전가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죄짐을 짊어 지셨고, 친히 낮아 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줄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는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자들과 땅아래 있는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일므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6-11
이러한 신앙고백은 곧 이어 우리도 서로 짐을 지는 신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며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빌1:14-15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윤리는 어떤 법조항으로 묶이어 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상대를 섬기로 짐을 대신 져주는 것으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 목회자들간의 적용
오늘날 많은 교회와 많은 목회자들이 배출되는 관계로 인하여 선의의 경쟁가운데서 그만 도를 지나쳐 서로 반목하거나 상대적으로 서로 질시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초대교회의 확장과 선교역사에서도 있었는데, 바울은 이러한 일들 때문에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
“형제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집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어떤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리니 ·····” 빌1:12-15
또한 결로 남이 씨를 뿌려 놓은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동역자들간의 윤리를 지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목회자들간에는 서로가 서로의 위치와 사정을 읽어주고 헤아려 주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할 때에 반목가 질시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사랑의 가르침에 따라야 할 것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대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참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 엡4:1-6

3. 결론

법은 항상 최후의수단이요 차선책이다. 목회자와 목회자간의 문제로 인하여 총회도 있고 교회 헌법과 정치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차선책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것에 호소하고 의지할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도 예수께서 우리의 심령에 새겨주신법, 성령의 법, 곧 사랑의 법에 의하여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세워주어야 한다.
성경은 말세가 되면 불법이 성하고, 사람들이 자긍하고 조급하며 이해심이 없어지면 자기만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그러한 때가 올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목회자와 목회자간의 윤리도 세상적 가치관이나 세속적인 잣대에 의해 판단되어지고 행동화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앞서 살펴본바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적인 모범을 따라, 즉 그분이 하나님의 보화를 버리고 종의 형체로 낮아지시며, 우리에게도 서로 사랑과 섬김의 도를 따르라고 하신 것처럼 서로이 짐을 져주는 복음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요, 가장 빠른 해결책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시대 목회자의 윤리는 오직 십자가의 정신으로만 해결 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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