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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어견^^ 정호승의 생각하는 동화 |
2006-12-19 17:23:41 조회: 1820 안선영  | | | 사람의 말뜻을 이해하는 개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대개 개들은 주인의 말을 몇 마디 알아듣기는 하지만 그렇듯 사람처럼 알아듣는 개는
없었습니다. 그 개는 영특하게도 사람이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모두 알아들어
사람들은 그 개를 해어견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개의 생긴 모양새는 지극히 평범합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똥개라고 일컫는
황구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또 영리한 진돗개 같기도 합니다.
몸피피는 겨울철에 털이 더부룩하게 자라면 좀 커 보일 뿐 평소에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습니다. 먹는 것도 까다롭지 않아 사람이 먹는 음식이면 무엇이든지 다
먹습니다. 어릴 때는 동네 아이들이 밭두렁에 눈 똥을 가끔 먹기도 해서 소녀의
놀림을 받기도 했답니다. 물론 그를 놀린 소녀는 주인집 딸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 소녀는 참 어여뻤습니다. 개는 소녀만 보면 좋아서 다가가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면 소녀는 언제나 개를 안아 주었습니다. 개가 소녀의
손과 뺨을 핥아도 소녀는 조금도 더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개를 참 사랑했습니
다. 소녀는 개를 참 사랑했습니다. 언제나 친구처럼 대했습니다. "난 내 친구 중에서
네가 제일 좋아. 네가 내 말을 좀 잘 알아들었으면 좋을텐데." 하고 말하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너랑 말을 하고 싶은데 넌 왜 말을 할 줄 모르니?"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개는 소녀가 짜증을 내면 개로 태어난 사실이 퍽 슬펐습니다.
'아, 소녀가 하는 말을 제대로 좀 알아들을 수 있었으면..., 그러면 소녀가 더 좋아할
텐데...' 개는 소녀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그 말뜻을 알아차리려고 애를 썼으나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이 개라는 사실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아, 나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개는 어떻게 하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다가 밤하늘에
뜬 달님에게 빌어 보았습니다.
"보름달님! 부탁이 하나 있어요. 저를 사람으로 좀 태어나게 해주세요."
보름달이 뜨면 개는 잠 한숨 자지 않고 꼬박 밤을 새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 그가 불쌍했는지 어느 날 보름달이 개에게 말했습니다.
"너를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줄 수는 없다. 그 대신 사람의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게는 해주겠다. 그래도 괜찮겠지?"
"네, 괜찮습니다. 좋고말고요. 보름달님, 정말 감사합니다."
보름달은 그때부터 개에게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귀와 마음을 열어 주었습니다.
개는 그때부터 소녀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소녀가
"잘 잤어?" 하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끄덕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가슴에 꼭
안으면서 "사랑해!" 하고 말하면 개는 빙그레 웃는 얼굴을 하면서 소녀의 맑은 눈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소녀가 심부름이라도 시키면 소녀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일을 해냈습니다.
"좀 무겁겠지만 내 가방 좀 들어 줄래?"
소녀가 몸이 아프다면서 그런 말을 했을 때에는 입에 가방을 물고 소녀가 다니는 학교
까지 간 적도 있었습니다.
"나 3시에 학교 마치니까 그때까지 학교로 마중 나와야 해."
소녀가 그렇게 말하면 개는 어김없이 그 시간에 교문 앞에서 소녀가 나오기를 기다렸
다가 소녀의 가방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돈을 주고 과자를 사오라고 하면 사 오고, 누구를 혼내주라고
하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혼을 내 주었습니다.
그러자 곧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는 신통한 개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소녀와 소녀의 아버지는 그런 소문이 그리 싫지 않았는지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나와서
취재를 하자 개가 이것저것 말을 알아듣는 장면을 찍게 했습니다. 그날 개는
'말하기 듣기 쓰기' 교과서를 가져오라는 소녀의 말을 알아듣고 그 교과서를 가져다
주어 사람들의 주목을 한목에 받기도 했습니다. 소녀는 자기의 말을 알아듣는 개를
더욱 사랑했습니다. 예전과 달리 깨끗이 목욕도 자주 시키고 맛있는 고기도 자주
먹이고 잠을 함께 자기도 했습니다. 개는 소녀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되자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밤하늘에 보름달이 뜨면 컹컹 짖으면서 달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곤 했습니다. 그런 어느날이었습니다. 그만 소녀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소녀가 하교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온 택시에
치여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소녀는 이미 숨을 거두어
버린 상태였습니다. 개는 너무나 슬퍼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학교로 소녀를
마중 나갔더라면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소녀의 집과 학교와 동네 사람들이 큰 슬픔에 잠겨있는 동안, 개는 몇 날
며칠 먹지도 않고 잠도 않자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소녀가 세상에 없어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차차 소녀의 죽음을 잊어 갔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도 개를
데리고 서울로 이사간 뒤 차차 딸의 죽음을 잊어 갔습니다.
개는 소녀가 죽고 난 뒤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개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싶었던 것은 사랑하는 소녀의 말을 알아듣고 싶었기
때문일 뿐,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개는 소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서
괴로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지껄이는 온갖 욕설과 돈 자랑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말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괴로울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개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어도
못 들은 척했습니다. 그러자 소녀의 아버지인 주인 남자가 심하게 구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소녀와 달리 돈이 많은 만큼 욕심도 많고 성질도 사나운 사람
이었습니다. "내 딸아이 말은 잘 듣더니, 왜 내 말은 안 듣는 거야? 너, 날 무시하는
거야? 맛 좀 볼래?" 주인 남자는 그런 말을 하면서 개를 구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개는 주인 남자가 심한 욕설을 퍼붓거나 밥과 물을 안 주거나 발길질을 하는 등의
구박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몽둥이를 들고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데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개는 도망가다가 잡혀 몇 번이나 심하게 매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주인 남자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죽은 소녀를 생각해서라도 시키는 대로 해야지.'
개는 날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주인 남자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고, 뛰라고 하면 뛰고, 춤을 추라고 하면 추고, 짖으라고 하면 짖고,
밥을 먹으라고 하면 밥을 먹었습니다.
그러자 주인 남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슬슬 개를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심심하면 주인 남자를 찾아와 개를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로 개가
어느 정도 자기들의 말을 알아듣는지 실험해 보았습니다.
개는 손님들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별이 어디 있니?" 하고 물으면 밤하늘을
보고 컹컹 짖어댔으며, "자동차가 어떤 거야?" 하고 물으면 주인의 고급 승용차를
향해 달려가 발로 자동차를 가리켰습니다. 또 어떤 여자 손님이 "여기 있는 여자들
중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물으면 젊은 미모의 여성 앞에 가 허리를 꼿꼿이
하고 앉아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천원짜리 지폐와 만원짜리 지폐도 척척
구분해 냈습니다.
"참 영리한 녀석이군."
"충직하기도 하니까 사람보다 나아."
손님들은 그런 말을 하며 개의 등덜미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럴때마다 개는 슬펐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이런 장난과 희롱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다시 보름달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보름달님, 이젠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말을 알아
듣지 않을 수 있을까요? 보름달님께서 사람의 말을 알아듣도록 해 주셨으니까 이제는
알아듣지 못하게도 좀 해주세요."
개는 보름달을 향해 그렇게 말하다가 그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보름달님이 한참 동안 미소를 띠며 개를 쳐다보다가 "그래, 알았다. 머지않아
네 소원대로 될 것이다." 하고는 구름 속으로 천천히 몸을 감추었습니다.
다시 또 시간은 지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주인 남자는 은근히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각계각층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최고급
술과 음식으로 파티를 열며 즐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파티가 끝날 무렵이면 주인
남자는 으레 개를 불러 자랑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인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개를 보고 사람들은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러자 한번은 파티에 참석한 손님 한 사람이 자기도 한번 말을 시켜 보겠다면서 자리
에서 일어나 개에게 말했습니다.
"넌 정말 참 영리한 개구나. 네가 정말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면 이 집에서 가장 더러운
것을 한번 찾아와 보렴."
개는 그 말을 듣고 얼른 파티장 의자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회장직을 몇 개나 인쇄한 주이 남자의 명함을 물고 나와 손님의 발 앞에 갖다 놓았습니
다. 그러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크게 소리를 내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놈의 **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주인 남자는 개를 향해 몽둥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개는 굳게 닫혀 있는 대문을 향해 달려나갔습니다. 그러자 대문 앞에 있던 한 손님이
얼른 대문을 열어 주었습니다.개는 쏜살같이 대문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개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는
개의 귀와 마음을 보름달님이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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