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 일로 기억합니다. 한여름, 시골 교회에 서울 선생님들이 오셨습니다. 대학생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신학생들인 것 같습니다. 남녀 선생님 십여 분이 오셔서 참 재미있게 여름성경학교를 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은 연필과 공책을 상품으로 주셨습니다. 그때 들은 모세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모세가 갈대 상자에 담겨 엄마와 헤어지는 장면에선 모두 울었습니다. 여름성경학교가 끝나고 선생님들은 서울로 돌아가시면서 내년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후 1년 간은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듬해 여름에 서울 선생님들이 다시 오시기로 한 날, 나와 친구들은 이른 아침부터 20리 떨어진 동네 어귀로 나가 선생님들을 기다렸습니다.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신작로에 앉아 하루 종일 기다렸습니다. 당연히 밥을 굶었지요. 서울 선생님들을 실은 차는 밤중이 돼서야 도착했습니다.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우리가 기다리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선생님들은 당황하시며 반가워하셨습니다. 차에서 내린 선생님들은 우리를 안아 주셨습니다. 먼지를 뒤집어 써 얼굴이 뽀얗게 된 우리는 선생님들의 품에 안겨 울었습니다. 선생님들의 품은 참 따뜻했습니다. 선생님들의 무릎에 앉아 덜컹거리며 교회로 왔습니다. 그리고 꿈 같은 여름성경학교에 새벽부터 참석했습니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그 후로 서울 선생님들과 편지를 주고받거나 연락을 하진 못했습니다. 선생님들의 이름도 모릅니다. 막연히 감신대 학생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린 시절에 감리 교회에 다녔고 그분들이 성경을 너무 잘 가르쳐 주셨으며 직접 설교도 하셨던 것으로 봐서 신학생들이라 짐작해 봅니다. 거의 40여 년 전의 일이니 그때 선생님으로 오신 분들은 지금 연세도 꽤 되셨을 겁니다. 그래도 한 번은 뵙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때 선생님들이 안아주시던 현삼이 이제 목사가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그 품에 다시 한번 안기고 싶습니다.
서울 선생님을 두 번째로 만나던 해에 우리 집은 도시로 이사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시골을 찾았을 때, 밤나무 밑에 있던 옛 예배당은 사라지고 새 예배당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새로 지은 예배당이 좋으면서도 서울 선생님들과 함께 하던 추억의 예배당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 많이 섭섭했습니다. 일전에 시골 교회를 다시 찾았습니다. 이제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 예배당에서 나와 동갑이신 목사님이 섬기고 계셨습니다.
어린 시절의 서울 선생님들이 나를 사랑했나 봅니다. 어린 내가 그 사랑을 느꼈나 봅니다. 그 후로 서울 선생님들과 여름성경학교는 항상 나의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내가 교사가 되고, 목사가 되면서 그 선생님들과 같은 교사,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루 종일 길가에 앉아 먼지를 뒤집어 쓴 얼굴과 고사리 같은 손을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선생님들은 그런 우리를 껴안아 주셨습니다. 나도 그렇게 안아주는 교사,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흔히 ‘품는 목회’라고 말합니다. 아마 그때 선생님들이 나를 품어주셨던 것이 목회의 원조가 아닐까 합니다.
짧은 두 번의 만남, 이름도 얼굴도 기억할 수 없지만 나의 마음에 새겨진 서울 선생님들은 내가 교사가 되고 목사가 되어 따를 수 있는 본이 되셨습니다.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마음에 새겨진 서울 선생님들의 사랑이 큰 힘이 됩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의 마음에 있는 서울 선생님처럼 내가 새겨졌으면 좋겠습니다. 서울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따뜻한 품이 그립습니다. 서울 선생님에게 받았던 사랑이 목사가 되게 했다고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을 통해 나의 마음 속에 얼굴 없이 새겨져 있는 서울 선생님들을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1965년 강원도 원성군 흥업면 사제리 사제교회를 찾아 주셨던 서울 선생님들을 사랑합니다.
글·조현삼 「감자탕교회」로 잘 알려진 서울광염교회 담임 목회자로 전도와 구제 사역에 힘쓰고 있다.
사진·함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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