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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gif) | 기다리는 아이
슬이는 이슬처럼 맑은 눈을 가진 아홉 살 소녀랍니다. 슬이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노라면 까만 밤 쏟아질 듯 다가오는 별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슬이야, 노올자.” 하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 같은 촉촉한 마음이 그 안에 있었어요. 슬이가, 누가 불러도 ‘응’이라고 대답해 줄 것 같은 눈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답니다. 슬이는 일어날 수 없는 아이거든요. 다리에 힘을 넣어 제발로 걸어다닐 수 있는 그런 아이가 아니예요. 날마다 꽁꽁 걸어 잠근 방안에서 조그만 창문으로 파아란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어요. 슬이는 태어나서 한 번도 발로 땅을 밟아 보지 못했어요.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슬이가 엄마 품에서 젖을 먹던 때, 열이 와서는 슬이 다리의 힘을 다 빼앗아 가 버렸다는 거예요. 아빠는 그 일로 화가 나서 바다에게 투정하느라 밤마다 바닷가에서 소리지르고 권투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폭풍이 몰아쳐 와서는 아빠를 붙잡아 가버렸대요. 할머니는 지금도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저 놈의 원수 같은 바람만 아니었어도…….” 하시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하시곤 하지요. 아빠가 그렇게 어이없이 파도에 휘말려 가신 후 엄마는 낮에는 씩씩이가 되어 열심히 일하다가 밤에는 울보가 되어, 작은 슬이 몸을 으스러져라 껴안고 밤을 지새곤 하셨대요. 그래도 그 때가 슬이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어요. 지금도 슬이는 엄마 품에서 풍겨오던 비릿한 냄새가 그리워지곤 한답니다.
가난한 엄마는 슬이 수술도 시켜 주고, 또 특별한 학교에도 보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며, 다섯 살된 슬이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먼 곳으로 떠나가셨어요. 엄마가 바닷가 슬이네를 떠나던 날은 ‘뚜우’ 울리던 뱃고동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왔어요. 슬이는 사립문을 나서는 엄마의 신발끄는 소리가 너무 무거워서 차라리 엄마가 날개라도 달고 훨훨 날아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빼꼼히 열린 사립문 사이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갈듯말듯 설듯말듯 하는 엄마를 오래오래 바라보았어요. ‘언제고 꼭 돌아오실 거란 건 알지만, 그날이 언제일지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어린 슬이는 생각했어요. 그날부터 슬이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아이가 되었어요. 선창가로 고기담는 일을 하러 가신 할머니를 기다렸어요. 할머니가 오실 때면 바다쪽 하늘이 쪽빛이 되곤 한다는 걸 알고부터는 노을지는 하늘을 기다렸어요.
“우리 슬이 오늘 심심하지 않았니?” 거친 손으로 슬이를 안아 주시던 할머니에게서는 선창가에 널브러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묻어 있어서 좋았어요. 거친 목소리로 온 마을 일을 혼자 염려하는 아저씨 이야기, 꼬질꼬질한 집안일들을 온 종일 쏟아 놓고도 돌아가기가 아쉬운 듯 섭섭해 하는 아주머니 이야기, 엄마 옷자락을 붙잡고 과자 사달라 조르는 행복한 아이 이야기가 좋아서 할머니 냄새를 기다렸어요. 뱃고동 소리가 나면 엄마가 돌아오실 것 같아 뱃고동 소리를 기다렸어요. 세숫대야에 물을 떠 들고 오시면서 ‘끄응’ 하고 소리지르시는 할머니의 신음소리를 기다렸어요. 그 소리가 나면 슬이는 깨끗하게 씻을 수 있었어요. 할머니가 오셔서 문을 활짝 열어 놓는 시간을 기다렸어요.
“아휴, 슬이가 오늘은 많이 싸 놓았나 보구나. 예쁜 슬이를 냄새가 폭 절여 놓겠는걸.” 할머니가 힘이 드실텐데도 짜증내지 않으시고 문을 열면 파아란 하늘이 화들짝 슬이 방으로 뛰어들어 오고 맑은 공기가 뒤따라왔어요. 할머니는 바람이 밉다지만 슬이는 그렇지 않았어요. 얼굴을 볼 수 없는 아빠, 그 아빠의 소리가 성난 파도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아빠를 데려갔다는 파도마저도 다정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슬이는 거센 겨울 바람을 기다렸어요. “겨울 파도 소리에 아빠가 와요. 성난 바람 타고서 아빠가 와요. 예쁜 슬이 보고 싶어 아빠가 와요. 슬이 혼자 심심할까봐 아빠가 와요. 할머니 안녕하시냐고 아빠가 와요. 엄마 보고 싶다며 아빠가 와요.” 기다리며 슬이는 노래를 불렀어요. 노래를 부르노라면 엄마 얼굴이 떠오르곤 했어요. 살며시 웃으실 때 보조개도 따라 웃는 다정한 엄마가 환하게 웃어 주어 행복했어요.
아빠랑 엄마는 언제나 같이 계신가 봐요. 슬이가 아빠 생각하려면 엄마가 따라 생각나고, 슬이가 엄마를 생각하려 해도 어디서 오셨는지 아빠가 따라 생각나거든요. 슬이는 샘이 나기도 하지요. 슬이는 홀로 두고 엄마랑 아빠만 언제나 함께 계시니까요. 할머니께 미안해서 할머니한테는 비밀로 하지만요. 어떤 땐 고맙기도 하고요. 엄마 아빠 함께 계시면 두 분은 외롭지 않을거고, 슬이를 만나러 오실 때 엇갈릴 일이 없어서 좋잖아요?
기다리는 일은 슬이에게 즐거움이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슬이에게 기다리는 일이 하나 더 생겼어요. 바로 온 마을에 은은한 음악소리가 들리는 날이었어요. 음악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등이 넓은 아저씨에게 업혀 나들이를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지요. 슬이는 그렇게 힘센 사람을 처음 봤어요. 할머니는 슬이를 씻겨 주실 때마다 쩔쩔매시곤 하여 여간 죄송하지 않았는데, 그 아저씨는 슬이를 업고도 겅중겅중 걸어가시는 것이었어요. 울퉁불퉁 팔에 솟은 힘줄이 든든해 보여 슬이는 업혀서도 미안하지 않았어요. 아저씨는 슬이를 업고 바닷가를 지나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선창가도 지나갔어요. 하늘이 파아랗게 내려다 보는 날 이렇게 바닷가며 선창가를 걷는다는 것은 슬이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아저씨와 슬이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어요. 슬이가 보고 싶어하는 엄마 아빠 이야기며, 아홉 살짜리 슬이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연약한 다리 이야기도 했어요. 걸어서 선창가를 소풍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비밀 이야기도 털어 놓았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어느새 그 음악소리 나는 집에 이르게 되곤 했어요.
슬이가 이 아저씨를 만난 건 아주 우연한 기회였지요. 어느 날 할머니가 선창가에서 만난 등이 넓은 아저씨와 같이 슬이에게 왔어요. 아저씨는 슬이를 보더니 “슬이는 샛별 같은 눈을 가지고 있구나. 그 별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아 내 마음의 보자기를 펼쳐서 받아 간직하고 싶은걸.” 하시는 것이었어요. 슬이는 ‘이 분은 동화를 잘하시는 분인가 봐! 이 아저씬 참 좋겠는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저씨가 큰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겠어요. “슬이야, 너랑 친구하고 싶은데 그래 줄 수 있겠니?” ‘그럼요. 바로 제가 바라는 것도 그거예요.’ 슬이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방긋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어요.
이렇게 사귄 아저씨는 가끔씩 슬이에게 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 주고 예쁜 그림책도 읽어 주었어요. 또 슬이 손을 꼭 잡고 누구에겐가 자꾸만 비는 것이었어요. “슬이의 친구 예수님께서 슬이와 항상 함께해 주세요. 슬이가 외롭지 않게 해 주세요. 슬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지켜 주시고 할머니를 축복해 주세요.” 아저씨가 얼마나 간절하게 복을 빌어 주시는지 슬이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자꾸만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아저씨가 친구해 주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예수님이 친구되어 달라는 말을 하셔서 ‘혹시 아저씨는 내가 싫어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맡기려나 보다.’하고 섭섭했어요.
“아저씨, 예수님이 누구예요?” 슬이가 맑은 눈을 굴리면서 여쭈어 보았어요. “응,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또 사람을 만드셨단다. 이 아저씨도 만드시고 또 슬이도 하나님이 만드셨지. 그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위해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 주셨지. 누구든지 예수님과 친구가 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또 슬프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위로를 받아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지. 그렇게 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분이란다.” 아저씨의 말만 듣고도 슬이는 예수님이 참 좋은 분이란 것을 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저씨가 그런 예수님께 자기를 소개시켜 주신 것이 싫지 않았어요. “그럼 어저씨는 이제 제 친구 아니예요?” “무슨 말이냐? 이 아저씨는 여전히 슬이의 친구란다. 친구란 언제나 변하지 않는 거야. 어느 날은 친구 했다가 또 어느 날은 친구가 아니었다가 그러는 게 아니잖니?” 슬이는 아저씨의 말씀에 안심이 되었어요.
아저씨하고 만나는 날이 쌓여 갈수록 슬이의 맑은 눈에 샛별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았어요. 아저씨는 슬이네 마을 예배당에서 사신댔어요. 아저씨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어요. 슬이는 생각했어요. “아저씨는 참 좋겠다. 매일 친구랑 노는 것이 일이니까…….” 어떤 때는 아저씨가 가져오신 크레파스로 그림도 그렸어요. 슬이는 언제나 엄마랑 아빠랑 슬이가 함께 있는 그림을 그렸어요. “슬이는 엄마 아빠를 무척 좋아하나 보구나?” 아저씨는 슬이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자그마한 소리로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 때마다 슬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요. ‘네’라고 대답하면 금방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아저씨는 슬이 마음을 참 잘 알아 주셔서 슬이가 말하고 싶지 않을 때는 아무 말도 시키지 않았어요. 하지만 슬이가 괜스레 울적해 있을 때는 재미있고 신나는 이야기로 웃기곤 했어요.
어느 날 아저씨가 조용하게 말씀하셨어요. “슬이야, 다음 주일날 이 아저씨가 사는 예배당에 가지 않으련? 너도 아저씨랑, 또 아저씨의 다른 친구들이랑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해요, 아저씨. 그게 어려운 일인가요, 뭐. 저도 예수님하고 친구하고 싶었어요.” “정말이냐? 고맙다.” 아저씨는 어린애처럼 펄쩍펄쩍 뛰었어요. 가끔 슬이는 목사님이란 그 아저씨가 어른이란 생각이 안 들 때가 있었어요. 그냥 친구라는 생각뿐일 때가 있었어요. 그 때마다 ‘예수님의 친구가 되면 모두 저렇게 어린아이 같은가 봐.’ 생각했어요.
아저씨와 약속하고 이틀이 지난 아침, 마을에 은은한 음악이 울려퍼지고 슬이네 사립문이 삐걱 열렸어요. 그리고 멋진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오셨어요. ‘와 멋있다. 굉장한 신사였네.’ 슬이는 늘 편안한 바지와 웃옷을 입으시던 아저씨가 말쑥한 양복을 입으신 모습에 놀랐어요. “슬이야, 약속한 주일이란다. 오늘 아저씨랑 예배당에 가기로 했는데 준비되었겠지?” “네.” 슬이가 대답하자 아저씨는 번쩍 슬이를 안아 등에 업어 주셨어요. 포근했어요. 편안했어요. 그 넓은 등에 업혀 예배당에 갈 때까지 슬이는 꿈이 아니길 얼마나 빌었는지 몰라요.
이렇게 시작한 나들이가 벌써 석 달째 계속된 것이지요. 이제 슬이는 달력이 꼭 필요하게 되었어요. 은은한 음악 종이 울리는 날을 미리 알아야 할머니께 말씀드려 깨끗하게 씻고 예쁘게 머리도 빗을 수 있으니까요. 그날을 기다리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행복했어요. 아저씨는 약속을 아주 잘 지키셨어요. 슬이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모여 예배드리는 그날에 슬이를 업으러 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것 같았어요.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아저씨가 오지 않으면 슬이는 너무 실망이 될 것 같아 절대로 사양은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어요.
슬이가 예배당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된 어느 날 목사님으로부터 아주 신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머지않아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실 거야.” “정말요? 아저씨가 말씀해 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씀 맞아요?” “그렇단다.” “그럼 저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나요?” “만날 수 있고말고, 예수님께서 오시면 맨 먼저 ‘슬이야!’ 하고 부르실텐데.” “설마요~. 전 예수님하고 친하지도 않은데요, 뭘.” “슬이는 예수님을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나 본데 예수님은 슬이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으시단다.” “그럼 제가 엄마 아빠도 없이 할머니랑 살고 있는 것도 아시나요?” “응.” “그럼 제가 걷지 못하는 것도요?” “그렇다니까.” “그럼 제가 파아란 하늘과 맑은 공기와 사람들이 많은 선창가를 걷고 싶어하시는 것도 아시겠네요?” “다 아신단다.” “그러－엄 제－에－가 예수니－임을 좋아하는 것도요?” “…….” 목사님은 슬이의 마지막 물음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냥 고개만 끄덕이시는 것이었어요. 슬이는 ‘괜히 곤란한 질문을 해서 아저씨만 당황하게 했나.’하고 후회하며, 아저씨의 얼굴에 두 손을 대었어요. 슬이는 아저씨 눈에 손을 얹다가 깜짝 놀랐어요. 아저씨가 울고 계시는 것이었어요. 아직도 따스한 눈물이 슬이의 작은 손을 흥건히 적셨어요. “슬이야, 네가 예수님을 좋아한단 말을 들으니 아저씨가 기뻐서 눈물이 나는구나. 예수님은 예수님을 좋아하는 슬이를 만나시려고 오시는 거란다. 슬이의 불편한 다리가 되어 주시고, 외로운 슬이의 친구도 되어 주시고 가난한 슬이랑 할머니를 위로해 주시려고 오시는 거야. 예수님은 늘 그러셨거든. 아픈 자를 위해, 슬픈 자를 위해, 외로운 자를 위해, 자유롭지 못한 자를 위해 오셨지. 그리고 그들에게 나음을 주시고, 위로를 주시고, 자유를 주셨단다.” 아저씨는 슬이를 잡은 팔에 힘을 주시면서 말씀해 주셨어요.
“예수님이 나를 만나러 오신다니 정말 기뻐요. 어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요. 예수님이 절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것도 궁금하고요.” 슬이답지 않게 말이 많아지고 흥분하는 것을 보신 아저씨께서 빙그레 웃으셨어요. “꼭 만나게 될 거야. 아주 행복하게 만날 수 있을 거야. 세상에서 제일 친한 사람처럼 말이다.”
그날부터 슬이는 예수님만 기다리는 아이가 되었어요. 방에 혼자 있으면서도 만나게 될 예수님을 생각했어요. 손을 씻고 머리를 빗으면서도 예수님을 생각했어요. 목사님이신 아저씨 등에 업혀서도 예수님을 생각했어요. 선창가를 걸을 때나 파아란 하늘을 볼 때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실 때도 예수님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게 되었어요. ‘기다리는 것은 행복한 일이야.’ 어린 슬이는 이렇게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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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60. 예수님을 기쁘시게! | |  58. Everyday Christmas! 임마누엘 예수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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