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소명
이한규 목사
예레미야 1장 1-10절
오늘 본문을 보면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소명 받는 장면을 보면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 전에 아시고, 구별하시고,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부르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여러분! 이 말씀을 보면서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만 알고 구별하고 세우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아셨고, 구별하셨고, 지금 현재의 이 모습 이대로 세우셨고, 앞으로도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시고, 구별하시고, 세우셨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아시고, 구별하시고, 세우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아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장점만 구별하시고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장점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단점은 마귀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장점도 만드셨지만 우리의 단점도 역시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단점에도 하나님의 설계와 계획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혹 단점이 있을지라도 절대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점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보다 단점 때문에 겸손해지는 것이 훨씬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장점이 있으면 감사하고 멋있게 활용하며, 단점이 있으면 겸손해지면서 멋있게 배우면 됩니다. 우리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설계 아래, 손길 아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자리로 세우실 때 감당할만한 능력을 주신다는 교훈입니다.
자신을 선지자로 세웠다는 말을 듣고 예레미야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그는 아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소명을 거절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1) 선지자의 길이 정말 힘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정말 좋은 길이고, 보람된 길이지만 사람들이 그 진실을 이해해 주지 못하니까 힘들 때가 많습니다.
2) 그 길은 두려운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두렵다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공포스런 두려움"이 아니라 "거룩한 두려움"을 말합니다. 선지자의 길은 사람의 길이 아니고, 하나님의 길입니다. 그래서 정말 조심스럽고, 정말 두렵고, 정말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3) 그에게 결정적인 핸디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할 줄을 잘 몰랐습니다. 선지자가 말할 줄 모른다는 것은 보통 핸디캡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할 줄 모르는 아이라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감당할만한 능력을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자리로 부르셨을 때 그 일을 감당할 만한 힘을 틀림없이 주실 것입니다. 9절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약한 부분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리고 강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약한 부분을 겸손히 인정하고 그 부분을 하나님께 맡기면 오히려 그 부분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셋째,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자리를 감당케 하시는 능력이 임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두가지가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첫 번째로 무엇이 필요합니까? 겸손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7절 하반부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말고, 내가 보내는 곳으로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네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말고, 내가 명령하는 것만 말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와 묵상이 정말 필요합니다.
2) 또 하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담대한 믿음입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왜 인간은 불행하게 될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만 하면 틀림없이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일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별도로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정말 피곤하고 결국 그 삶이 불행하게 됩니다.
식사도 그렇지 않습니까? 먹어서 유익한 것이 입에도 달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병적인 사람은 먹어서는 안될 것만 좋아하고 몸에 유익한 것은 싫어합니다. 그래서 결국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리고 행복이 물질에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도 불행하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리고 더 불행한 것은 알아야 할 것은 알지 못하고 필요 없는 것만 많이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큰 불행은 하나님을 믿지 못함으로 두려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움이 있으면 지식이 높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지식의 근본은 믿음이다." 믿지 않으면 그 많은 지식이 전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믿음 자체도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데, 그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얼마나 중요할까요?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여러분! 가장 큰 불행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장 행복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얼마나 단순한 원리입니까? 오늘 예레미야에게 들려진 "두려워 말라"는 음성이 여러분들의 심령에도 레마가 되어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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