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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험이 찾아올까요?(약 1장 13-15절) 프린트   
김하영  Homepage Email [2006-12-18 19:37:31]  HIT : 4191  
왜 시험이 찾아올까요?

약 1장 13-15절


죄를 짓거나 잘못을 저지르고 시험을 당할 때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보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태도가 흔히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첫째,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립니다.

부부싸움을 해도 그렇습니다. 자기야 본래 좋은 사람인데 당신하고 살면서 나빠졌다고 하며 그 나빠진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는 경우를 자주 목격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탓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가정을 좀 먹는 네 가지 탓"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즉 남편 탓, 아내 탓, 부모 탓, 자식 탓을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다 보면 탓하는 것이 체질화되어 고약한 사람이 됩니다.

내 탓은 죄를 끊는 동기부여를 하지만 남 탓은 나의 죄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2. 둘째,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잘못된 일이 정말 환경 때문에 생겨난 일일까요? 아닙니다. 환경은 큰 이유가 아닙니다. 지난 다음에 생각해 보십시오. 진정 그 길밖에 없었습니까? 얼마든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환경 탓이 아닙니다. 원인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가난하면 도적질을 해도 됩니까? 화나면 살인을 해도 됩니까? 안 되는 것이지요. 환경 탓이라면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됩니다.

3. 셋째, 자기 죄를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나만 그런가?"라고 하면서 다 그렇다고 보편화시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내 죄는 내 죄이고, 자기 잘못은 자기 책임입니다.

4. 넷째, 실수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기는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깜빡 실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실수였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할 수 있는 씨앗이 이미 자기 속에서 자라고 있었음도 인정해야 합니다.

언젠가 연세대학교 앞 공중전화 부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통화를 간단히 하라고 하던 아주머니를 전화하던 청년이 발끈하여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청년 이야기가 한심합니다. 자기는 자라면서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 순간에 자기가 왜 그랬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순간적인 실수였을까요? 아닙니다. 이미 자기 속에 오랫동안 누적된 욕구불만이 있었습니다. 그 누적된 것이 그 순간에 터져 나온 것입니다.

5. 다섯째,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고 하며 은근히 책임의 초점을 흐려버립니다.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단단히 결심했다면 그 사건에서 충분히 시험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충분히 이길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 시험을 이기지 못해 자기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이지 애초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된 것은 아닙니다.

6. 여섯째, 자기 책임을 항상 마귀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귀가 중간에 장난해서 어찌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태도는 가장 고약한 태도이고, 가장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설사 마귀가 중간에 장난을 했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과 의지를 통해 벌어진 일은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7. 일곱째, 자기가 저지른 것이 죄가 될 줄 몰랐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참으로 미숙한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곱 가지 태도는 자신이 자신을 과보호하려는 태도입니다. 어린아이들을 과보호하면 버릇이 나빠지듯이 자신을 과보호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나쁜 태도가 체질화됩니다. 그러면 문제 해결은 요원해지고 시험을 극복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을 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부족함을 겸허히 인정하면서 잘못을 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남을 나를 보호해 주는 역사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는 "내 탓이다"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게 되고. 축복된 자리를 향한 위대한 출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시험이라는 문제를 통해 그 사실을 도전해 주고 있습니다.


왜 사람에게 시험이 찾아올까요?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왜 시험이 올까요?"라는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시험을 당하는지, 혹은 시험이 어느 길로 오는지를 알아야 시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보다 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야고보는 시험의 근본 원인을 자기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원인은 세상이 아닙니다. 환경도 아닙니다. 원인은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시험은 내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정말로 내 책임이 없는 상태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았는데도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영적으로 부족해서..."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다 보면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원망의 자리"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것을 대단히 큰 죄로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원망이란 기본적으로 마음의 간사함을 나타내는 것이고, 원망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리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망하는 사람을 보면 진실한 삶의 모습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2-3장에 나오는 하와를 대하는 아담의 모습을 보십시오. 일이 잘될 때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하더니 일이 잘못되니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저 여자가"라고 나옵니다. 그렇게 여자 탓을 하다가 나중에는 여자를 주신 하나님에게까지 원망을 돌립니다.

이처럼 원망은 자꾸 거슬러 올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남 탓, 환경 탓이요, 좀더 나아가면 조상 탓이요, 마침내는 하나님 탓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원망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원망하는 죄를 지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와 시험이 있을 때마다 내 책임을 항상 먼저 생각하고 슬기롭게 어려운 상황을 능동적으로 헤쳐 가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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